공지사항

아들 논산훈련소 퇴소식

닥터J 검안 연구소 2021. 2. 3. 14:25

"" 2015.07.24 논산훈련소 홈페이지에 올린 면회 후기 입니다.""

많은 기록이 날라갔지만,이거만 겨우 남아 있어서,,,,오랫만에 끄집어내어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주인공 아들은,강원도 철원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하다,2017년 3월 무사히 전역하여 대학 졸업하고 현재 취업 준비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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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이등병 계급장

 

6.15일 메르스때문에 입소식 행사없이 부모 통제선을 벗어나 ,

검은색 마스크를 받아쓰고 훈련소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울컥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쏫은게 엇그제 같은데, 더디게 가던 시간이 무심한듯 한순간에 흘러, 

드디어 퇴소식 초청장을 받게 됩니다.5주가 1년은 된듯 까마득 했지만 지나간 시간은

빠르게 느껴 지더군요.

"열혈아빠"??ㅋㅋ

거창한 타이틀이 될런지 모르겠지만,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솔직한 소감 올립니다.

부족하나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준비

 

자나께나 휴대폰을 끼고 살았던 아들의 취향을 고려하여,시원한 에어컨,푹신한 침대가 있는곳,

 

조용하게 휴식을 취할수 있는곳을 물색한 끝에, 퇴소식 장소인 연무대에서 3.7km,차로 5분내외 거리인

 

팬션을 3주전에 예약 했습니다.예약전 인터넷 편지로 아들의 취향을 물어본 결과 팬션이 좋겠다

 

하여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구요.~훈련병 부대편지는,4~5일 걸려 팬션 예약후에 도착 합니다.~

 

3주전부터 계획을 세우고,틈나는데로 차근차근 면회 준비를 해 오면서,면회 2일전부터 직장 끝나고

 

본격적으로 목록에 따라 하루는 새벽시간까지,

 

당일은 밤부터 새벽까지 목록을 체크 해가며, 밤새워 준비 했지요.~아들퇴소식에 맞춰 휴가를 냈어요~

 

엄마가 운전을 하기에 엄마는 눈좀 붙이라고 해놓고,2개의 중,대형 아이스박스에 준비한 음식을

 

채워넣고,훈련병 용품 챙기고 그렇게 준비를 마쳤습니다.

 

 

2. 출발과 도착,수료식 행사

 

초청장을 받고 수료식장소를 중대행정반과 상황실에 문의 했더니,바쁜지 전화를 안받아

 

초대장에 적혀있는 중대장님께 직접 확인전화 했는데,친절하고 상세하게 위치를 알려 주셨습니다.

 

다른 업무에 바쁘실텐데,고작 위치 확인을위해 전화 하는게 좀 겸연쩍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ㅎㅎ

 

장소는,연무대 29연대 행사장 이었습니다.

 

새벽 4시에 아들엄마를 깨워 샤워하고 옷입고 준비하는데 1시간.

 

5시에 서울 출발,7시20분에 도착.약 2시간20분소요.아빠는 달리는 차안에서 1시간여 눈을 붙이고,

 

익산 도착,대기하고 계시던 외할머니 태운후 펜션으로 가서 예약한 객실에 짐풀고,

 

훈련소 주차장 빠져나올때 막히면 30분이상 시간이 걸린다는 후기를 보고 걱정된 나머지,타고온 승용차를 놓고,

 

팬션 다인승 차량 픽업써비스를 받아 8시40분 부대 정문앞에 도착했더니,벌써 50여 미터 줄을 서 있더군요.

 

차량은 입장하고 있었고,9시가 되니 줄서 있던 인파를 입장 시킵니다.

 

앞서간 인파를 따라 이동하였고,관절이 안좋으신 외할머니를 모시고,무더고 습한 날씨에 걷느라 조금 지치고

 

힘들어서,차를 안가져온게 약간 후회가 되더군요.ㅠㅠ

 

연대 본부 정문앞 로비에서 해당중대를 찾아,훈련병 인적사항(소속) 기재후 아빠 이름적고 영외 외출 허가증 받아들고

 

연대 수료식 장소인 불교 법당으로 향했습니다.법당안은 에어컨이 틀어져 있어 시원했습니다.

 

해당 중대 의자 앞자리를 찾아 가족모두 앉아서 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다가,화장실에도 다녀오고,

 

훈련병 입장이 시작되어 혹시 아들이 볼수있을까 기웃거려도보고,아들의 뒷모습이라도 볼수있을까 두리번 거려 찾아보기도 하고,

 

 

뒷모습이 비슷비슷해서 해당중대 좌석에 앉아있는 아들을 찾지못하다가 ,드디어 엄마가 먼저 찾아서 알려줘서 아들과 손인사 하고,

 

아들은 아빠가 못찾는것 같아 모자를벗어 흔들다가,눈이 마주치자 눈물이 날것같아 고개를 돌려 버리는것 같았습니다.

 

활짝 웃어 줬지만,가슴이 뭉클 해지면서 아빠눈에 눈물이 고여 시야가 흐려지고...이렇게,,,,꿈에 그리던 아들과 5주만에 첫 대면이

 

먼 거리에서 이루어 졌답니다...ㅎ

 

연대장 축사,훈련병 시상식 모두 건성으로 듣고,오로지 아들을 만나는 일념으로 가슴 졸이며 설레이는 시간을 보냈구요,

 

드디어 연병장 자갈 깔아놓은 장소에서 부모가 계급장 달아주는 행사가 있다는 방송이 나오고,훈련병 단체퇴장 한후 부모퇴장.

 

두리번 거리고 찾다가 드디어 아들 발견,아들 이름을 크게 부르니,워낙 무뚝뚝한 아들이라 아빠~!! 라고 조그맣게 부르고,

 

아빠가 안아주며 눈물을 글썽이자 아빠 또 그런다~ 라는 표정으로,아들이 난색을 표하고,빛나는 이등병 계급장 달아주고,기념촬영하고

 

내무반에 아들혼자 들러,후반기 교육 갈때 짐이되는,인터넷으로 보낸 편지출력물,개인 휴대품 가져오고,부대밖으로 아들과 손잡고 걸으며 얘기하는데,

 

아들도 오랫만에 아빠를 만나 신이나고 흥분되는듯 상기된 목소리로 떠들더군요.ㅎㅎ 오랫만에 아들 목소리 들으니,정말 꿈결처럼 좋았어요....

 

바로 대기하던 승합차로 이동, 펜션으로 향했습니다.도착시간 11시 20분경.미리 에어컨을 틀어놓아 시원 합니다.

 

엄마가 아들 휴대폰 건내주니 차안에서 부터 5주동안 못했던 친구들과 소통을 하느라 정신이 없더군요.마치 굼주렸다는듯이...ㅎㅎ

 

 

3. 휴식

 

팬션 도착하여 아들 편한 옷으로 갈아 입히고,시간이 아깝다며 얼른 팬 2개에 에 고기를 굽고,바리바리 싸온 음식 꺼내서 아들먹이는데,

 

음식에는 관심이 없는듯 휴대폰에만 열중 하는것 같았습니다.집에서는 좋아하는 등심 구워주면,

 

혼자서 2근 정도는 순식간에 먹어 치우던 녀석인데,많이 안먹더군요.아들이 별로 안먹으니 같이 먹던 식구 4명 

 

~아빠,엄마,외할머니,삼촌~ 도 덩달아 먹히지 않아 3근중 절반은 남겨 왔습니다.훈련소 근처에서 배달시킨 치킨,피자가 맛이 없다하여,

 

서울 맛집에서 챙겨간 피자,치킨은 나중에 먹는다 하여 꺼내지 안았고,과자~호두쿠키,체리쿠키~는 휴대폰 하면서 조금씩 집어 먹더군요.

 

푹신한 침대에 누워 친구 친지에게 전화하며 큰소리로 훈련무용담을 떠들며 통화하는 모습이 듣기 좋고,보기 좋았습니다.ㅎㅎ

 

갑갑하면 차로 시내에 드라이브 하고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 ? 했더니,,, 아빠,시간이 아까워~

 

침대에 누워서 뒹글뒹굴 이게 더 편해~~ 합니다.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 왔을까?? 하는 생각에,,,애처로운 맘이 들더군요....

 

훈련소에서는 잠자리에 들기전에는 기대거나 눕지 못한다고 해요. 내무반에 정자세로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파,

 

침상에 걸터앉아 다리를 내려놓고 있는게 더 편하고 좋아서 모두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푹신하게 보이는 더블침대 에 끌려 팬션을 택한게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흐믓했습니다.ㅎㅎ

 

주특기교육-후반기교육-부대배치 문자는 12시에 옵니다.

 

아들이 급했는지,12시 막지나 확인하라 해서 문자를 확인하고 보여 줬더니,어느정도 안도 하는듯 합니다.

 

 

아들 모자 냄새를 맡아보니 땀내가 진동 합니다.집에서 준비한 식촛물 앞뒤로 뿌려 각방에 딸린 외부데크 난간에 걸쳐놓아

 

앞뒤 뒤집어가며 말려주고,런링을 팬션 아줌마가 세탁,탈수 써비스 해준다 해서 빨아 말리며,역시 군화도 이쪽저쪽 돌려가며 말려주고,비가

 

오락가락 개었다 햇볓났다,들여놨다 널었다를 반복하며 아빠는 안과 밖을 왔다갔다 합니다.

 

아들보니 잠을 안자도 졸립지않고 피곤하지 않았습니다.아들이 덩치만 클뿐 아직은 애기같기도 합니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 소통에 열중하는 아들을 종 종 바라보면,

 

아들은 아빠가 바라보는게 멋적고 창피한지 이불을 뒤집어썻다,벗겼다를 반복 하더군요.ㅋㅋ

 

침대에서 뒹글 거리며 노는 아들 근육이 얼마나 생겼나 팔둑도 잡아보며 허벅지,종아리를 만져보다가 깎지않은 발톱을 발견,

 

발톱을 깍지않아, 헉~~돼지 배따게 생겼네? 했더니,엄마가 얼른 와서 깍아 줍니다.엄마가 깍으면 아프게 깍는다고,

 

집에 있을때처럼 어리광을 부립니다.훈련소에서 한번도 안 깍았는지,발톱사이에 검떼가 끼었더군요.ㅠㅠ

 

훈련소에서 훈련이 빡세지 않아서 인지,근육도 그대로인것 같아요.부식이 잘나와서 살이 더 쪗다고 하네요.

 

 

오후 5시 30분까지 부대에 도착하라 했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4시에 서둘러 저녁을 먹입니다.

 

이번에는 피자 두조각,치킨 반마리 이렇게 먹더군요.깎아서 준비해간 파인애플 몇조각먹고 수박,참외는

 

손도 안대서 식구끼리 몇조각먹고 많이 남았습니다.아카시아 꿀물 한잔 먹고,요쿠르트는 안먹고,

 

좋아하는 파인애플은 공연 관람하면서 아들입에 넣어주니 몇개 먹었고 남은 꿀물도 가져가서 공연중 먹였습니다.ㅎ

 

 

3. 군 최대규모 연무관 개장기념 첫공연

 

어느덧 아들과의 5주만에 회포를 푸는 달콤한 시간은 흘러,오후 5시가 됩니다.

 

부랴부랴 짐을싸고 밖으로나와,팬션 주인 사장님이 써비스로 찍어주는 기념사진 찍고,잘 쉬고 간다는 인사 하고,부대 공연장으로 향합니다.

 

5시 30분에 공연장 입구에 도착하여 동기들만나 얘기하라고 아들을 내려주고,부대 공연장 옆에 주차장에 주차하고,

 

군 최대규모를 자랑한다는 연무관 공연장에 들어가 아들과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아 잡담을 나눕니다.

 

21일 개관식 했다는, 신축건물에서 나오는 페인트 냄새등으로 머리가 약간 띵~ 한듯했지만 견딜만 했습니다.

 

앞자리를 차지한다고 귀빈석 정중앙 바로 뒷자리에 앉았더니 문제-?-가 발생 하더군요.

 

중령,대령,참모급들과 각 부대 연대장님들 을 비롯하여 투스타 부대장이신 사단장님 까지

 

바로 앞줄 & 앞줄건너에 입장하여 앉았더랬습니다.

 

아들이 잔뜩 몸이 굳어 지며,긴장 하면서 한다는말,아빠 부담되는데? 하는거 였어요.

 

그래서,여긴 부대밖이라 사적인 공간이니 괞찮아~!! 쫄지마~!! 라고 얘기 해줬답니다.ㅋㅋ

 

다행이도 연대장이나 사단장이 입장하는데,위화감이나 위압감을 조성하는 상급자에대한 거수경례나 일어서는 일이 없었습니다.

 

상급자를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일도 없었고,아는체하거나 그런일도 하지 않더군요.사회에서보다 더 공연장 매너를

 

지키는것 같았고,꼭 미국식 군대 같았습니다.

 

1.2부 구분이 없었지만 편의상 나누어 작성 하겠습니다.

 

1부는 걸 그룹 나오고,포크송가수가 기타치고 노래를 부르는데,아빠는 피곤해 졸았고,아들은 열심히보며 재있다 합니다.

 

2부는 국군 교향악단,오케스트라 연주속에 아들과 나란히앉아 수준높은 연주와 소프라노,테너,바리톤 의 음성으로 가곡,명곡들을

 

들으며 즐길수있어 좋았습니다.투우사의 노래,비발디의 사계중 여름과 마지막 앵콜곡 오,쏠레미오는,음악을 좋아하고

 

여러가지 악기를 잘 다루는 우리 아들이 너무 좋아해서 저도 흐믓했답니다.아들이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는줄도 처음 알았구요,

 

아들과함께 군을 통해서 처음으로 아빠와 함께 공연을 감상하게 된게 행운 이었습니다.이런 소중한 기회를주신 육군 훈련소 측에

 

감사 드립니다.소중한 추억이 되었네요.ㅎㅎ

 

부모와 헤어지고 무대와 멀리 떨어진 우측 뒷자석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던 아들들의 잡담,웅성거림이 신경이 거슬렸습니다.

 

공연의 집중도가 떨어져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죠.앞줄에 앉으신 어느 연대장님이 참모를 보내 진정시키는듯 했지만,

 

큰소리 치거나 군기를 잡거나 그런일은 없었던듯,여전히 웅성거림이 멈추질않아 공연의 옥의 티 였습니다.

 

 

어느듯 공연이 끝나고, 장정들은 그자리에 남고,부모님들은 퇴장해 주시라는 방송이 나옵니다.

 

아쉬운듯 아들을 중심으로 무대를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고,아쉬운 작별을 준비합니다.

 

7~8시간 아들과 함께한 시간이 아쉬웠고 또다시 헤어짐이 싫더군요.

 

그래도 다른 퇴소식 부모님들 보다,아들과 더많은 시간을 함께해서 행운이라 생각이 듭니다.

 

품안에 자식과 헤어지는게 항상 쉽지가 않네요.ㅠㅠ 이제는 슬슬 놓아주는 연습을 해야 할것 같아요.

 

아빠는 포옹하면서 또 시야가 흐려지고,아들은 아빠 안보려 일부러 고개를 돌리고...ㅋㅋ

 

 

4. 에필로그

 

이상 허접한 면회 후기 였습니다.

 

오늘 아들은,의무학교가 있는 대전으로 주특기교육 떠났겠네요.

 

저도 아들따라 그동안 정들었던 이곳 육군 훈련소 홈을 떠날까 합니다.

 

의무학교로 면회 가야 지요~!!!

 

그동안 아들로 인하여,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여러 부모,곰신님들 대단히 감사 합니다.

 

수료식을 앞둔 부모,곰신님들 화이팅~!!! 입니다.^^

 


※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가슴 졸이며 아들을 군대에 보낸 아빠의 시린 마음은, 추억으로 남습니다※

지금은 가시고 없는 저의 아버지(아들의 할아버지)는, 1979년 가을, 아들을 군에 보내고

아들 생각에 울컥해서 일주일 동안 밥을 못 드셨다 합니다.

1979년 겨울 최전방,

저의 아버지가 눈이 많이 내린 12월 어느 날, 자대 배치받은 이등병 아들 첫 면회 오셨었죠,

(의정부 훈련소에서 훈련 4주 끝나고 면회 오셨는데, 면회가 안돼 철조망 사이 먼발치로 서루 얼굴만 바라보는 안타깝고 짧은 첫 상봉이 이루어지고...8주 훈련끝나고 하루도 아닌 4시간 면회후, 깜깜한 밤에 군용트럭타고 자대 배치됩니다. 하필이면 왜,깜깜한 밤? 자대 가는길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긴장,불안,초조 했씀ㅠ 당시에는 제 앞가림에 급급해서 아버지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전북에서 최전방으로 면회를 오셨으니 아들 얼굴 하루 보려고 이틀 이나 시간을 내셔야 했지요.

(최전방 교통이 불편하던때라 오고 가는데 기차로 하루 걸립니다. 서울에서 강원도 철원 아들면회 갈때도 교통이 불편했지만...)

땟국물에 쩔어 목덜미가 쎄까맣게 번지르르한 졸병 야전잠바를 여관방에서 빨아, 밤새 선풍기 바람에 말려 주셨죠. 거지같은 군인행색, 추위에 튼 쫄병 아들의 손을보고 얼마나 걱정이되고 마음 아프셨을까요?

최전방 추위에 물이 얼어 다들 세탁을 못해 땟국물이 쩔어 다들 목덜미 번들거리는 야전잠바를 입고 다녔는데(명색이 대한민국 군인인데, 그당시엔 거지같은 행색, 6.25때 중공군 사진처럼 초라하고 남루했다),

다들 고생 스럽고 혹독했던 겨울 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모습을 보시더니 최전방 군인들이 제일 고생한다고 하셨습니다.

쫄따구옷이 깨끗하다고 윗고참한테 한마디씩 들었지만, 그래도 면회 나갔다가 귀대할때

담배, 떡, 을 잔뜩 사 오는 덕분에 기압은 안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단기 직업군인이셨던 저의 아버지는 6.25 때 군대에 끌려가서 생사의 귀로에 맞서야 했고,

국방의 의무를 지고 끌려갔던 저의 군대는, 유신 군대 과도기였던 70년 말~80년 초였죠.

군기라는 미명하에 이유없는 갈굼,구타와 욕설이 난무하던 참혹하고 혹독한 군대였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졸립고, 3多 에 시달리는 인고의 시간 이었지요.

저의 아버지가 체험했던 6.25 전쟁 군대는, 생과 사.

제가 겪었던 유신 군대는 혹독, 참혹.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군대의 강인했던 추억(?)은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가끔씩 군대에 2번 끌려가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며, 겪었던 찰나의 순간들이 문득문득 선명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한창 젊은 나이에 겪은 절망감, 무력감, 원하지 않았던 극한체험, 억압, 강요된 의식, 짓밟힌 자존감,등...그 무엇들이 부매랑이되어 가슴을 후려 치기도 합니다.

제가 겪은 군대는,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함으로 점철된, 어쪄면 아련한,

젊은 날의 추억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이야 군대가 많이 좋아졌지만,

그옛날 열악하고 극적인 군대의 경험들이 각각 아버지, 아빠의 뇌리에 각인이 되어서

군대보낸 아들을 쓸데없이 걱정하게 만든 요인이 아니었으까 하는 생각을 갖어 봅니다.

제가 아들을 보내고 아빠의 경험으로 소환된 노심초사(혹독, 참혹)의 깊이는,

저를 보내고 겪었을 아버지의 노심초사(생과 사)의 크기와 무게, 깊이에 비해

한참 적고, 모자라고, 부족하다는걸, 철이 든 다음에야 절실히 께닳았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뀐다 해도,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애정의 깊이나 무게는

결코 변하지않는 불변의 법칙이라 생각됩니다.

2021년 가을. 나의 아버지를 그리며....